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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의 남미 여행/콜롬비아

D+17, 변화의 도시 메데진

메데진에 오기 직전의 1박 2일 캠핑과 트래킹, 잦은 이동으로 기진맥진해있던 우리는

메데진에 와서 완전 긴장감이 풀려서 굉장히 게으른 하루하루를 보냈다.

메데진에서의 첫 날은 숙소가 있는 Poblado지역을 어슬렁 거리며 구경했고,

둘째날에는 겨우 힘을 내서 센트로(구시가지) 지역에 가서 보테로 광장과 안티오키아 박물관,

산 안토니오 광장 등을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는 Santo Domingo라는 곳에 갔다왔다.

셋째날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서 도저히 안하면 안되겠다 싶어 리얼시티투어를 했는데,

정말 정말 대 만족이었다.

내가 메데진에 대해 알게 된 것 대부분은 이 워킹투어를 통해서다.


메데진은 마약왕 파블로 코소바르가 태어나고 활약하던 곳으로 

한 때 마약 카르텔로 악명이 높았던 도시였다. 보고타에서 바이크 투어할 때 가이드도 그랬던 것처럼

정말 20년 전만해도 메데진에 관광객이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번 메데진 워킹투어를 담당한 가이드는 28살이었는데, 그 가이드 역시 자기의 어린 시절은 항상 공포였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의 이웃이 죽는 것을 봤고, 항상 사람들이 죽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마약왕 때문만은 아니다.

콜롬비아는 아주 오랜 기간 극좌파와 극우파의 대립으로 내전이 멈추지 않았고, 

극좌파와 극우파가 만든 비합법적 군대가 마약 카르텔과 결합하면서 더 큰 폭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에는 게릴라들이 산간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그것이 그저 정치적인 문제였다면

이들이 마약 카르텔과 결합하면서부터는 폭력이 도시 안에서 발생하게 되었고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며 상황이 훨씬 복잡해졌다고 한다.


메데진 뿐 아니라 콜롬비아 전체가 오랜 내전과 군부독재 하의 인권침해, 폭력으로 상처가 많은 나라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사람들은 참 밝았다. 

낯선 외국인인 우리에게 친절했고, 항상 열려있었고, 쾌활했다.


그 이유를 가이드는 '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아마 그래서 우리가 갔던 안티오키아 박물관의 전시 중에 '기억'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았나 보다.

산 안토니오 광장의 보테로 조각도 그렇고...


메데진은 재미있는 도시다.

옛날에 폭력이 난무했던 도시라고 생각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아름답다.

그 중간에 산간지역에 빼곡히 자리잡은 집들, 고가 아래 즐비하게 늘어선 중고벼룩시장,

광장 곳곳에서 쥬스와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하루 더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있었다고 할 수 없을만큼 

흥미로운 도시, 메데진. 

정말 나중에 콜롬비아는 꼭! 꼭! 다시 와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