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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의 남미 여행/칠레

D+84, 가슴아픈 현대사를 가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 때문에 오기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궁금했던 곳이었다.

남미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회주의 대통령 아옌데와

쿠데타를 일으켜 17년 동안 독재정치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피노체트.

1990년에 독재정치가 끝났으니, 불과 20년 밖에 되지 않은 이야기고 아직도 이 일은

칠레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그 흔적을 한 번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산티아고의 첫 인상은 '서울'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처음에 갔던 동네가 약간 신시가지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곳곳에 보이는 배달 오토바이들, 편의점, 도로, 건물들이 정말 익숙했다.

나중에 듣고보니, 칠레는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유럽풍인 것과 다르게

미국식 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는 나라라고 한다. 실용주의적인 것도 그렇고.


다른 남미 도시와 비교하면 아주 아주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도시였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큰 크기의 개들이 길에 널려있다는 것.

아타카마에서부터 느꼈던 건데, 정말 칠레의 개들은 진짜 진짜 크다.

근데, 사람들이 정말 개를 좋아하는지, 공원 곳곳에 그리고 길 곳곳에 개들과 같이 있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근데 그 개들이 그 사람들이 기르는 개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물론 키우는 개도 있겠지만

길거리 개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개들을 시민들이 모두 함께 보살핀다고 한다.

밥과 물을 주고, 백신을 맞히고, 날이 추워지면 옷을 입히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공원 관리인 아저씨들이 큰 개집을 만들고 있는 걸 봤는데, 

그건 시의 지원을 받아서 곧 추워질 날씨를 대비해서 길거리 개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거라고 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칠레, 그리고 산티아고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


산티아고를 빠르게, 그리고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으로 꼭 워킹 투어를 추천하고 싶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아옌데'와 '피노체트'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칠레의 건국 역사와 스페인 침략군이 들어오기 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 '마푸체'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보고타와 메데진이 그랬듯이, 옛날의 역사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정치, 사회적인 이야기가

나는 굉장히 재미있다.

아, 그리고 산티아고 워킹투어에서는 역사 뿐 아니라 음식, 커피와 같은 다른 문화적인 요소들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산티아고는 대부분 빨리 건너 뛴다고 하는데,

물론 왜 그런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틀 정도는 머무르면서 시내를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기억과 인권 박물관'은 꼭 가보길!!


<Tip> 산티아고 여행 팁

1. 워킹 투어

대부분 오전, 오후로 나뉘어 하루 두 번 진행이 되는데 코스가 다르다.

오전에 하는 워킹 투어는 시내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며 역사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

칠레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라면

오후에 하는 워킹 투어는 central  mercado를 중심으로 주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취향에 맞게 고르거나, 여유가 된다면 둘 다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대부분 호스텔에서 워킹 투어 팜플렛을 가지고 있으니, 정보 찾기는 어렵지 않다.

구글에 santiago walking tour로 검색해도 된다. 아, 워킹 투어를 하는 곳이 두 군데가 있는데

두 군데가 약간씩 코스와 성격이 다르니 비교해보자.


2. 기억과 인권 박물관

무료.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음. 전시는 다 스페인어로만 설명이 되어 있음.

하지만 약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음. 

게다가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지하철 Quinta Normal 역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있고, 

역 바로 옆에는 숲처럼 큰 공원 Parque Quinta normal 이 있어 휴식하기에도 좋음.


3. Pre colombian 박물관

남미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보자.

스페인 침략 이전 중남미 문명을 아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박물관이다.

중남미 문명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만약 시계 방향으로 여행한다면 여행 초반에 이곳에서 전반적인 문명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후에 페루, 볼리비아 등 위 쪽 지역에서 그 지역에 있었던 문명과 관련된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입장료는 4500페소. 하지만 산티아고의 모든 박물관은 일요일에 무료이다.


4. 숙소

Chile lindo hostel에서 숙박함. 그냥 가면 1인 9,000페소(도미토리)인데,

부킹닷컴으로 미리 예약하고 가면 6,000페소로 더 저렴함.

침대가 3층 침대까지 있는데, 의외로 엄청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있고, 개별 침대마다 취침등이

설치되어 있고 깔끔해서 묵기에 좋았음. 아침 포함인데, 아침식사도 풍성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음. 


기억과 인권 박물관. 피노체트 정권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에 대한 다양한 기록 뿐 아니라

전 세계 인권에 관련된 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1층 로비 이외 공간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침략자이면서 칠레의 건국자이기도 한 발비디아 장군 동상. 

특이한 점은 말에 고삐가 없고, 말이 장군과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인데, 

그 어떤 것도 발비디아 장군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발비디아 장군 동상이 있는 아르마스 광장 반대편에 있는 마푸체 동상.

마푸체는 스페인 침략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인데, 잉카 제국에게도 지지 않고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해서 살고 있던 원주민이라고 한다. 스페인 정복 이후에도 300년간을

스페인에게 복속되지 않고, 끝까지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현재에도 칠레에는 마푸체 부족이 남아있는데

차별정책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대통령궁 앞에 있는 아옌데 동상. 동상에는 '나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는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아옌데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라디오 연설에서 했던 말.

워킹 투어 때 소개받은 맛집. 채식으로 칠레의 다양한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찾은 곳.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다! 무엇보다 다 채식이라서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곳.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간 국립 도서관. 내부가 정말 장난아니게 멋지다.

날이 추워지면 거리의 개들이 다 옷을 입고 있을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네루다의 집 근처 벽화. 네루다 집 근처는 대학가여서 싸고 양많은 음식점들이 많다고 한다. 술도 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