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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의 남미 여행/페루

D+48, 난생 처음해본 고산 트래킹, 와라스 69호수

여행 떠나기 전부터 정말 많이 들었던 트래킹 이름

'69호수 트래킹'과 'W트래킹'..

나는 파타고니아 지방에 가지는 않으니까 파타고니아 쪽 트래킹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69호수 트래킹은 내가 가는 페루에서 할 수 있는 트래킹이라서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트래킹을 엄청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자연 환경 보는 것은 좋아하니까...

음.. 해보면 좋겠지? 라는 생각.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길래 다들 69호수, 69호수 하나...하는 궁금함.


그래서 와라스에 갔다.

와라스는 우아스카란 산자락에 자리한 고산도시인데, 이곳을 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트래킹을 한다고 한다.


고산병이 워낙 무섭다길래 미리부터 겁을 먹고, 치클라요에서 출발하는 밤버스에서 고산약을 먹었다.

약 덕분일까. 해발 고도 3100m 정도 된다는데, 오전까지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오후에 약기운이 떨어질쯤, 약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안먹어봤는데, 뭐, 특별히 이상한 증상은 없다.

만약 고산인 것을 모르고 갔으면, 전혀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도착한 당일은 고산적응할 겸 주변에 와리 문명 유적지를 볼 수 있다는 Wilkahuain이란 마을에 다녀오고,

다음날 새벽 5시30분. 69호수로 향했다.


69호수는, 이 쪽 우아스카란 국립공원에 400개가 넘는 호수 중 하나로, 69는 호수의 번호라고 한다.

이 호수는, 트래킹 시작 전에 본 호수.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람!!

이 호수 때문에 69호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음..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트래킹은 오전 9시쯤 시작되었다.

트래킹하다가 고산병 오면 안되니까 새벽에 고산병 약도 하나 먹어주고!

트래킹 시작!!

어, 근데 다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의외로 걸을만하다.

조금씩 가파른 곳이 나오면서 약간 힘들긴 했지만, 걸으면서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영탄이랑 같이 했던

오르막길 자전거 트래킹을 떠올려보니, 그것보다 힘들지 않은 것 같다.

그 땐 정말 물도 엄청 많이 마시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나중에는 정말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는데.

그거랑 비교하면 이건 그냥...조금 힘든 정도..

영탄이도, 내가 너무 잘 걸어가니까 놀란 눈치다. 흐흐흐흐. 







여행하면서 몸이 정말 많이 좋아졌나보다.

콜롬비아에서 타이로나 국립공원 간다고 걸어갈 때 생각해보면 정말 체력 저질이었는데...

왠지 기분이 좋다.

산중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고, 아무도 알 수 없다더니.

정말 걷는 내내 비가 왔다 해가 나왔다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비가 멈추질 않고 내린다.

이렇게까지 올줄은 몰라서 우비를 따로 챙기진 않았는데....

나름 방수되는 잠바인데 계속 비를 맞으니 옷이 점점 축축해지고, 결국 안에 입은 옷이 젖어버렸다.

게다가 트래킹 코스 중간 중간 있는 늪지대를 지나며 잘못 발을 딛는 바람에 신발도 진흙범벅, 다 젖고.

한 번은, 바위인 줄 알고 신나게 밟은 소똥에 신발이 푹 다 들어가버리고...

고산을 걷는 것도 걷는 것이지만, 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소똥 지뢰가 정말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가는 길이 참 예뻐서, 영탄이랑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걸어갔다.

마지막 정상 도달 15분-20분 정도만 빼면 정말 걸을만 했다.

정상이 해발고도 4800m라니까, 마지막 코스가 정말 힘들긴 한 것 같다.

오르막도 가파른데다가, 비는 계속 내리고, 고도는 높고.

마지막에는 정말 둘다 아무말 없이 걷기만 했으니....


아무튼 그렇게 한 4시간여를 걸어서 도착한 69호수!!!



아름답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끝내준다했는데...


나는 날씨가 별로여서 그랬는지, 정말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트래킹 시작하기 전에 보여준 다른 호수가 훨씬 아름답고, 69호수는 너무 삭막해보이기만 했다.


어떤 여행자는 파타고니아를 통틀어 남미에서 이제까지 가본 곳중에 제일 아름다웠다고, 너무 좋았다고 하던데.

바다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다 날씨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건가...


아무튼 너무 춥고, 경치는 그냥 그래서,

정상에 도착해서 정말 숙제하듯 증명사진 후다닥 찍고, 바로 내려왔다.

그래도 트래킹 하는 길이 참 예뻤어. 재밌었어. 위안하면서......